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천장까지 닿은 책장이 나온다. 삼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헌책방이다.
주인은 책의 위치를 모두 기억한다. 손님이 제목을 말하면 망설임 없이 책장 한 칸을 가리킨다.
책은 출판사나 작가 순이 아니라 주인만 아는 규칙으로 꽂혀 있다. 처음 온 손님은 길을 잃기 쉽지만, 그 덕에 생각지 못한 책을 집어 들게 된다.
책이 사람을 고른다
겨울이면 손님이 줄지만 오래 머무는 사람은 늘어난다. 난로 옆 의자는 늘 차 있다.
단골들은 난로 위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마신다. 책을 사지 않고 한나절 읽다 가도 주인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.
찾던 책보다 우연히 만난 책이 오래 남는다.
책장 사이에 남은 흔적
헌책에는 앞 주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. 밑줄과 여백의 메모, 책갈피로 쓴 오래된 영화표가 책 사이에서 나온다.
주인은 이런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판다. 손님들이 가장 반가워하는 것도 낯선 사람이 남긴 메모라고 한다.
그는 책이 사람을 고른다고 믿는다. 그래서 오늘도 책장을 정리하지 않는다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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