벽 한 면에 수십 장의 포스터가 겹겹이 붙어 있다. 위의 종이가 찢기면 아래의 글자가 드러난다.
그래픽 디자이너 한 명은 이런 벽을 십 년째 사진으로 모으고 있다. 그는 이 벽들이 어떤 교과서보다 레이아웃을 잘 가르친다고 말한다.
그가 모은 사진은 이만 장이 넘는다. 같은 벽을 몇 달 간격으로 다시 찍어, 글자가 쌓이고 벗겨지는 과정을 순서대로 남겼다.
우연이 만든 레이아웃
크기가 다른 글자가 우연히 겹치면서 생기는 리듬이 있다. 그 리듬은 다시 그의 작업에 들어간다.
비에 젖은 종이는 색이 번지고, 햇빛을 오래 받은 종이는 빨간색부터 바랜다. 그는 이런 변화를 인쇄물에 쌓인 시간의 표정이라고 부른다.
거리는 매일 새 판을 짠다. 디자이너는 그걸 읽을 뿐이다.
벽에서 배운 것을 화면으로
그는 학생들과 함께 벽 사진을 잘게 잘라 다시 붙이는 수업을 한다. 정해진 격자 없이 글자를 놓아 보면 무엇이 먼저 읽히는지 몸으로 알게 된다.
이 방식은 웹 화면을 짤 때도 쓸모가 있다. 크기 차이만으로 순서를 만들고, 겹치는 부분에서 시선이 멈추게 하는 법을 벽이 먼저 보여 준다.
도시의 벽이 깨끗해질수록 이런 장면은 줄고 있다. 그래서 더 서둘러 기록한다고 했다.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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